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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대궁] 창덕궁: 화재와 중건의 역사

ohlee52 2023. 10. 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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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역사는 간략히 정리하기가 어려워서 간단한 특징과 화재와 중건의 역사를 찾아봤습니다.


창덕궁 특징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려온 창덕궁은 사실 경복궁보다 오랜 기간 법궁(정궁)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물론이고, 이방자 여사(순종의 아들 영친왕의 비)역시 198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창덕궁 낙선재에 머물렀습니다. 이때문에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근대적 시설이 함께 있습니다(차고와 전등, 탁자, 의자, 커튼 등).

여러번 화재가 났지만, 문화적 가치가 있는 전각들이 많이 남아있고, 주변 지형과 어울어진 편안하고 독특한 구조가 특이한 궁궐 입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후원(비원) 역시 창덕궁의 자랑이지요.(일제가 창덕궁을 격하시켜 비원청이라고 불렀는데, 후원 자체를 비원이라고 부르는건 옳은 표현입니다.)

서울 5대 궁궐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창덕궁 전경
<창덕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축과 화재

첫 건축 : 태종(1405년)

2대왕 정종이 개경으로 천도를 했는데, 태종(이방원)은 즉위한 이후 한양으로 재천도 합니다. 이 때 창덕궁이 처음 만들어지는데요.

이미 경복궁이 건재 했음에도, 궁을 새로 만든 이유는 경복궁에서 본인이 피바람을 일으켜서(왕자의 난) 라는 추측이 중론인 것 같습니다. 

태종 이후에도 많은 왕들이 창덕궁에서 거주하며,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만 경복궁을 사용하는 양궐체제를 선호 했다고 합니다.

경복궁이 주례에 엄격히 맞추어 비교적 인위적으로 건축되어 있는 반면에,

창덕궁은 고려 양식을 따르고, 주변 지형에 맞는 설계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가보면 편안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중국에서도 엄격한 예법에 따라 건축된 자금성이 아닌 별궁에 거주한 황제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들이 창덕궁을 애용한 것은 경복궁보다 구조, 입지, 심미안적으로 거주지로서 더 걸맞아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두 궁을 다 가보면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 느끼기에도 녹음이 있는 창덕궁이 거주에 더 좋아 보인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경복궁은 내부에 지금처럼 녹지와 나무가 있지 않았고, 거의 흰색 모래나 돌판이 깔려 있었으며 건물도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으니.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는데 명·청대의 황제들은 예법을 철저히 준수해서 빡빡하게 지어진 자금성을 부담스러워해 많이 머물지 않았고 자금성 옆에 위치해 있고 넓은 호수와 정원이 갖추어져 있어 한결 여유로운 중난하이에 많이 머물렀다. 
-나무위키 참조-

첫 화재: 왜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한양을 떠나자 창덕궁은 불에 전소 했습니다. 화가난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는 말도 있고, 왜군이 불을 질렀다는 말도 있네요. 이듬해에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가 경운궁(현 덕수궁)에 거주하며 재건을 명하였고, 1609년(광해군1년) 다시 완공 되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화재: 인조반정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으로 인정전을 제외하고 거의 불에 탔습니다. 중건 된 것은 1647년(인조 25년)인데요,

왜란때와 달리 상당히 오래걸렸는데, 인조반정의 근거중 하나가 광해군의 무리한 궁궐 공사(창경궁, 인경궁)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번째 화재: 순조

창덕궁 선정전
<창덕궁 선정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803년(순조 3)에도 화재가 나서 거의 전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광해군이 만든 화려한 인경궁을 해체하면서 가져온 청기와 전각들이 대부분 불에 탔는데요, 이때 다행히 타지 않은 전각이 선정전 입니다. 그래서 선정전만 청기와를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마지막 화재: 1917년 화재

마지막 대화재는 1917년 11월에 일어났다. 대조전 서쪽 행각의 온돌주2에서 시작된 화재는 내전 영역 대부분을 불태웠다.
복구공사는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등의 전각을 이건하는 것으로 주요 부분을 충당했다. 이때의 재건공사는 창덕궁의 원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 자동차 차고와 전등, 탁자, 의자, 커튼 등 근대식 설비와 가구의 도입도 건축의 면모를 바꾸는데 일조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살아남은 전각들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목조 건축물이다 보니, 위처럼 많은 화재가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살아남은 기특한 전각들이 있습니다.

돈화문: 1608년(선조41년) 재건 추정

선정전: 1647년(인조 25년) 재건

인정전: 1804년(순조4년) 재건. 1857년(철종 8년) 보수. 일제강점기에 순종이 기거하며 많은 변화. 1994년에 원래대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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